미니멀리즘 -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대기업에 다니며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살던 라이언은 어느 순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는 삶에 큰 공허감이 있어 불행했고, 다른사람들처럼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공허감을 메꾸려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속도가 훨씬 빨라져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기 바빴고 물건을 사기 위해 살았다. 하지만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뭐가 중요한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버린 순간 친구와 자신의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라이언의 20년 지기 친구 죠슈아는 똑같이 대기업에 다니며 사회적 성공을 했지만 늘 행복해보인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다.
"넌 대체 왜 그렇게 행복한거야?"
죠슈아는 근처 카페로 가 라이언에게 미니멀리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언가를 사모으고 원하는 행동은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수천만년 전 초기 인류적 시절 혹독한 환경에서는 아주 유용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더이상 유용하지 않다. 인간이 기름진 음식을 갈망하는 것은 기근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했기 때문이지만 오늘날에는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할 뿐인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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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서로 물건을 차지하기 위해 잔뜩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 |
유전자에 새겨진 소유에 대한 욕망과 더불어 TV광고나 SNS 상에서의 나보다 우월한 타인의 삶을 내 삶에 적용시키려는 치명적인 실수를 통해 사람들은 물건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매체 속 화려하고 멋진 삶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광고 속 삶은 본보기이지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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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터를 방불케하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장 |
필요없는 물건을 과하게 사는 것은 그저 중독일 뿐이다. 소비는 쾌락이기에 쉽게 중독된다. 그런데 중독되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같은 쾌락을 위해 더 많은 자극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물건을 사게 되지만 공허감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필요없는 물건인데도 사야할 것 같다면 혹시 내가 각종 매체에 쇄뇌되어 '호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한다.
"넌 그 물건이 필요하지 않아. 그건 소용없을 거야. 그건 답이 아니야."
누군가의 의도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더 적은 물건으로 단순하게 사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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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로 가방 두개에 모든 짐을 넣어 여행하는 사업가 콜린 라이트 |
물건은 싸고 구하기도 쉬워졌다. 그래서 더 많은 물건을 쌓아놓고 살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 더 큰 집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적외선 열지도로 만든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평균 크기의 4인 가족이 하루동안 집의 40%만 사용했다고 한다. 모든 집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집의 크기에 맞춰 물건의 양이 달라지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사는데 필요한 물건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집이 커지면 그에 맞춰 생각없이 소비하여 쌓아두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요즘은 협소주택이라 해서 작은 집을 지어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협소주택을 직접 지어 사는데는 서울 집값의 반에 반의 예산도 들지 않으니 가능한 작은 집에 사는 것이 답인 것도 같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빚을 내어 집을 사지만,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할 뿐만 아니라 채무의 압박감은 하나의 걱정거리가 될 뿐이다. 보통 부동산은 빚을 내서 사도 안정적인 투자 자산으로 인식하지만 조금 덜 갖는 대신 걱정거리가 좀 더 적은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도 한 때는 헤비쇼퍼였다. 특히 옷과 구두가 많았는데, 대부분은 스트레스 해소 용도로 산 것이라 사서 한번도 안입거나, 한두번 입고 손이 안가거나, 한 철이 지나면 입지 않고 처박아놓고 또 새로운 것을 구입하곤 했다.
패스트 패션이 패션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는 양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질적으로는 결코 풍요롭지 않다. 그러니 상품의 가치를 잘 따져 소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 그 많은 옷과 구두를 정리했지만 아쉬워서 다시 생각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옷장을 정리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3개월간 33벌의 옷으로 살아보는 333 프로젝트를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적은 옷으로 살아보니 꼭 필요한 옷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뭘 입고 다니는지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도 그러려니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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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프로젝트 |
어떤 식으로 보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PNAS에 기고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간 7만달러 이하면 물질적 풍요가 향상되는것이 정신적 풍요의 향상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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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가계소득(GDP)과 관련한 삶의 평가 (PNAS. 2010) |
그렇지만 이 한계점을 넘어서면 삶의 질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돈을 더 가질 수는 있지만 더 행복해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헐리우드 배우 짐 캐리가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전부 부자에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이게 정답이 아니란 걸 알게 될 테니까."
최근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이를 블로그에 게시하여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 싶다.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많은 돈은 필요없는 것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불안했다. 그런데 이 다큐에서 답을 얻었다. 경제적 자유란, 자신에게 알맞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장시간 일하는데 많은 사람이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계좌에 있는 돈에 조금 더 보태는 것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인생이란 고지서, 돈, 직장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어디선가 미니멀 리스트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분명 미니멀 라이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생각이 같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사실 미니멀리즘은 소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건을 사야만 하니까 왠지 사야만 할 것 같아서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보면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필요가 없다.
나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직장을 떠나 새로운 모험을 해보는 데에는 약간의 위험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미니멀 리스트를 은둔자나 폐배자로 폄하하는 사람은 도전과 모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은 정말 행복한지 묻고 싶다.
나의 삶이 나의 것이며 유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자기를 보살펴 주는 사람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게 되는데, 성인이 되면서 이 애착이 물건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사랑하고 물건은 사용하는 것이다.
"네가 소유한 것들은 결국 너를 소유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우리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누구나 의미있고 가치있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더 많이 기부하고 더 성장하며 시간도 많고 더 만족하는 삶 말이다.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자신의 주위에 물건이 많이 쌓여있고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물건을 비우는 것만으로도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 본문의 내용 대부분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Minimalism: A Documentary About the Important Things), 감독: 멧 다벨라, 출연: 조슈아 필즈 밀번 & 라이언 니커디머스>에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