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회비 지로 불법인가 합법인가

적십자사에서 내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고

올해에도 적십자사에서 적십자회비를 내라는 지로용지를 보내주었다. 지로용지의 받는 사람에 내 집주소와 내 이름 세 글자가 딱 찍혀있으니 공과금 지로인가 싶어 유심히 볼 수밖에 없는데, 적십자회비 10,000원이 찍힌 지로영수증과 은행의 가상계좌번호들, ARS 결제방법들이 적혀있는 것이 공과금 지로용지와 다를 것이 없다. 아마도 꼭 내야할 세금인 줄 알고 납부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적십자회비는 명백히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기부금의 일종이다. 당연히 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다면 적십자사는 어떻게 내 이름과 주소를 알아내어 이런 꼼수를 부리는 걸까? 헌혈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런 개인정보 활용에는 동의한 기억은 없지 말입니다. 

적십자회비 지로


적십자사의 정체

적십자사는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이나 내란과 같은 무력 분쟁 속에서 희생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인도적 구호기관인데, 본부는 국제적십자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ICRC)로 스위스 제네바에 있고 세계 각국에 180여개의 조직이 존재한다. 붉은색 십자가 마크가 기독교를 연상시키지만 이는 스위스 국기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종교와는 관련이 없다. 

국제적십자위원회의 마크


우리나라도 이 심벌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사(Korean red cross)로 불리며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약칭 적십자법) 제14조에 따라 적십자사의 명예회장은 대통령, 명예부회장은 국무총리가 역임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마크


법인에는 그 설립이나 관리에 국가의 공권력이 관여하는 공법인과 그 밖의 법인인 사법인이 있고, 사법인에는 영리 목적의 영리 법인과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법인이 있다. 「민법」에서는 비영리 법인은 개인으로 구성된 사단(社團)법인과 특정한 목적을 위해 출연된 재산으로 구성된 재단(財團) 법인으로 정하고 있다. 

정부산하기관 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정부 산하기관이라 함은 정부로부터 출연금ㆍ보조금 등을 받으며 직접 정부로부터 업무를 위탁받거나 독점적 사업권을 부여받은 기관을 말하며,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법이라는 개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 특수법인으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으로 되어 있었으나 정부산하기관 관리기본법은 2007년 폐지되어 현재는 소속기관으로 표시한다. 

수입 기준을 적용하기가 마땅치 않거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할 공공의 목적이 존재한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지정하는 기관을 기타 공공기관이라고 한다. 대한적십자사는 기타 공공기관으로 되어 있는데, 민법 중 사단법인의 등기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공공기관처럼 보이지만 정부의 간섭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 사기업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비영리 기관이라고 영리 추구를 위한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법인의 설립목적과 본질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수익활동을 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또한 국민의 헌혈로 얻은 혈액의 1/3 정도를 의약품 원료로 공급하는 등의 수익사업에 사용한다. 한 번쯤 궁금하지 않았나. 헌혈자는 혈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데 수혈을 받으려면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말이다. 혈액관리법에 따르면 혈액 매매행위는 금지한다고 되어 있는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적십자사에서 피장사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오해라고 하지만 글자 그대로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대한적십자사는 우리나라에서 혈액사업의 독과점이나 다름없으며 여러 가지 논란과 문제가 많은 기관이다. 



적십자회비 지로 위헌

적십자회비는 1949년 전쟁고아와 전상자 구호를 위해 최초로 모금이 시작되었다(나무위키). 그러나 이후 각 동의 통장이나 반장이 대한적십자사 모금위원으로 각 집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에게 적십자 회원 가입을 권장하거나 회비 납부를 위한 지로용지를 배부하여 납부를 독려하고 그들에게 성과금을 지급하여 논란이 있었다(오마이뉴스, 2012). 그리고 지금 2022년에도 적십자회비 모금 형태는 버젓이 세금 고지서인 척 지로로 발송되고 있다. 납부를 안 하면 재납부 지로가 또 날아온다. 이사를 가도 어떻게 알고 또 보낸다. 계속 보낸다. 전 세계 198개국 적십자사 중 지로통지서를 이용해 모금하는 건 대한적십자사가 유일하다. 더욱이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으면서도 말이다. 

공산당도 아니고 정부는 어떻게 내 개인정보를 나의 동의 없이 누군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걸까. 이건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며 코로나 백신을 강제할 때에도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 느낌이다. 이건 정말 위헌 소지가 없는 걸까.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한적십자사의 운영과 회비모금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3항에 공공기관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일단 위법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그러나 위헌의 소지는 있다. 실제로 2017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헌2017헌마39)이 있었으나, 위 자료제공행위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므로 기본권 침해로 보지 않는 것으로 판단, 재판관 전원일치로 각하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헌법 소원이 진행 중인 걸로 안다. 

사실 대한적십자법은 1949년에 당시 대한적십자사가 국제적십자사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아 우리나라가 재난을 당했을 때 원조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어 가입신청을 위해 급하게 제정된 법률이다. 시대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광복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혼돈의 시기에 제정되어 70살이 넘은 법이 현시대에 상충되는 면이 있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번 헌법소원은 고등학생이 냈다고 한다. 백신 강제 헌법소원도 고등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은 어린 친구들이 더 대단한 것 같다. 이번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잡히기를 바래본다. 

참고로 적십자회비 지로 통지서를 받고싶지않다면 대한적십자사 콜센터 1577-8179에 전화를 걸어 지로 통지서에 기재된 전자납부번호를 알려주고 고지서 발송 거부 신청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래도 나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