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국물 얼룩의 정체
김치 국물의 붉은 얼룩은 고추의 카로티노이드(Carotenoid)에 의한 것으로 녹색의 엽록체가 열매가 익어감에 따라 노란색, 오렌지색을 거쳐 마지막엔 붉은색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생합성된다. 고추가 익으면 총 카로티노이드 함량은 35배 증가하게 되는데, 붉은색을 만드는 주요 색소 성분은 Capsanthin, Capsanthin 5,6-epoxide, Capsorubin의 세가지 크산토필(xanthophyll)이다. 이 중 캡산틴은 대부분의 고추 품종들에서 전체 카로티노이드의 30~70%를 차지한다(J Agric Food Chem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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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붉은 색소 생합성 과정 (출처=Antioxidants, 2019) |
엽록소로부터 카로티노이드가 생성되므로 녹색이 짙은 식물일수록 붉게 익을 확률이 높고, 이는 높은 카로티노이드 함량을 뜻한다. 베타 카로틴 섭취를 위해 색이 짙은 녹황색 채소를 먹으라고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화학적으로 분리된 첫번째 카로티노이드는 당근에서 나왔기 때문에 당근의 영문인 Carrot으로부터 Carotenoid라는 이름을 얻었다.
고추의 카로티노이드는 특유의 붉은 색과 함께 강력한 항산화제로서 건강상의 이점이 있다. 애초에 식물도 광합성을 하는 동안 엽록소 및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카로티노이드를 생산한다. 이는 인체에서도 똑같은 작용을 한다. 고추의 카로티노이드는 대부분 표피(이마와 손바닥 피부에 가장 많이)에 축적되어 유해한 UV 파장을 흡수하는 동시에 자외선에 의한 피부손상을 억제하여 광 과민성 피부에서 보호제로서 작용한다(Biochim Biophys Acta Mol Cell Biol Lipids 2020).
또한 안전한 천연 착색제로서 식품, 제약, 코스메슈티컬 제품 등에 상업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J Food Sci Technol 2015). 붉은색 합성 착색제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만큼 쉽게 착색되므로 이게 어딘가에 뭍으면 잘 안 지워진다. 당근의 주황색 물도 도마에 물들면 그대로 착색되기 쉽상인데 이보다 17배 정도 강력한 것이 바로 김치 국물이다. 김치를 도마 위에 올려놓기 전에 도마를 김치색으로 천연 염색을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좋다.
김치 국물은 햇빛에 지워질까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김치 국물로 인한 얼룩은 영원하지 않다(단, 도마 얼룩은 영원할 수도 있다). 옷에 튄 소량의 김치얼룩은 세탁하고 건조한 후 며칠 지나보면 사라져버리고 없는 경우가 있다. 왜일까?
항산화제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여 빛, 산소, 열 등에 의해 먼저 산화됨으로서 조직을 보호하는 물질을 말하는 것이다. 김치 국물 얼룩의 주범인 고추의 카로티노이드도 빛에 의한 산화적 손상을 막는 강력한 항산화제이며 이는 그만큼 빛을 포함한 많은 요인에 의해 쉽게 분해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옷에 김치 국물이 튀었을 때 세탁기 돌린 후 직사광선 아래 널어놓으면 금방 깨끗해진다. 이를 카로티노이드의 광표백(photobleaching)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표백제를 쓰는 것이 일상이지만 예전에는 섬유를 하얗게 만들기 위해 햇볕에 널어 말렸다.
김치국물은 양파즙으로 문지르면 없어진다고 하던데?
이게 뭔 민간요법인가 싶지만 꽤 과학적인 방법이다. 황 화합물이 있을 때 빛에 의한 카로티노이드의 광분해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양파즙이 김치 얼룩을 분해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분해되는 가속도는 빛의 강도, 온도, 산소, 카로티노이드와 황화합물의 초기 농도에 따라 달라진다(Biosci Biotechnol Biochem 2005). 양파즙을 바른 후 직사광선 아래 좀 널어놓거나 하룻밤 방치한 후(황 화합물) 60C 이상 따뜻한 물에(열) 과탄산소다와 같은 산소계 표백제를 넣어(산소) 세탁한 후 햇빝에 건조시키면(빛) 김치 얼룩을 빨리 없앨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양파즙 자체가 표백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광분해를 촉진시키는 촉매의 역할이므로 쓰지 않아도 무방하니 김치얼룩 없앤다고 양파를 희생시키진 말자. 양파는 먹는 게 남는 거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