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천리, 땅끝에 서서

나는 스스로 희망하는 삶을 이끌고 있는가.

선택은 했으나 질질 끌려가고 있지는 않나.

그 방법은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인가.

그렇지만 무척 과격하고 때로는 이기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가끔 정신을 차려보면 고속도로에서 100km로 정주행하면서도 졸음 운전중인 것 같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려해도 어느새 눈꺼풀을 짓눌러버리는 졸음처럼 무기력함은 힘이 아주 쎈 놈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전속력으로 돌진 중인 나를 보면 이게 정말 내가 맞는 걸까.. 이 길이 맞는지 불확실성 투성이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그렇다면 목적지를 찾는 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냥 길 위에서 걷는 것 자체가 인생인 것 같을 때가 많다. 그렇게 또다시 일어나 걷다가...그 발걸음이 이번에는 땅끝까지 다다랐다.

완도대교는 통일신라시대 해상왕이었던 장보고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하는 무역선(교각구 부분)과 투구(주탑부 부분)을 형상화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완도대교


지금 말로만 듣던 땅끝에 서 있다. 서울에서 천리나 떨어진 곳을 말이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 마을


땅끝탑을 보려면 땅끝 전망대를 거쳐야 한다. 땅끝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갈 수도 있지만 산책로로 걸어가도 5-10분 정도만 가면 도착한다. 습기가 많아 꿉꿉하긴 했지만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양산을 접고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땅끝탑으로 가는 길은 가파란 나무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 내려갈 때가 좋았지.


계단을 끝없이 내려와 마침내 땅끝탑에 도착했다. 북위 34도 17분 32초, 백두대간의 시작이자 끝인 곳이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기가 모이는 응혈점이라고 한다.

땅끝탑


땅끝점. 한반도를 뒤집어 놓은 것은 한반도의 시작점이라는 의미다. 이 곳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해남 8경 중 하나로 육단조범(陸端眺帆)이라고 부른다.


땅끝점


올라갈 때는 지옥의 계단이었다. 공기가 습하고 소금기가 섞여 있어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땀에 원피스가 폭 젖어서 본의 아니게 thㅣ스루 룩이 되었다. 올라가는 내내 산모기까지 앵엥거리며 따라다니는 통에 해남까지 와서도 헌혈을 했다.

지옥의 오르막길


아직 숙소를 예약하지 못해 간단하게 저녁도 먹고 하려고 근처 카페에 들렀다. 밖에는 비가 억수처럼 퍼붓고 있었다. 모기에 물린 팔을 긁적이며 숙소를 예약한 후, 캐러멜이 코팅된 퀸아망과 통헤이즐넛이 들어간 패스츄리를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었다. 적당한 피로감이 평범한 커피와 디저트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급하게 예약한 숙소는 해남 시내에 있던 남도호텔이었는데 성수기임에도 8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조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체크인을 하고 간식을 사기 위해 다시 나오니 비가 다시 억수처럼 퍼붓기 시작했다. 맥주를 사기 위해 장대비를 뚫고 수많은 물 웅덩이를 뛰어넘었다. 옷과 신발을 희생하고 얻은 대가는 꿀맛이었다.

간식에 진심인 자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츄리링을 대강 걸치고 부스스한 얼굴은 마스크로 가린 채 호텔 로비에 내려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식사를 하고 있었다. 조식은 따뜻한 콘스프와 샐러드, 삶은 계란, 토스트, 주스와 커피 등 간단한 메뉴들이 제공되었다. 종류는 별로 없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아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이다. 다음에 또 해남에 오게되면 여기서 또 묵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먹을 거 주니 맴이 풀린 자


여행지에서는 아무리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나중에 떠올려보면 그 때 그랬었지하며 웃음짓게되는 추억이 된다. 그게 일상을 버티게 해주니까 그래서 자꾸 떠나고 싶어지는 것 같다. 나의 비밀의 화원은 방구석이 아닌 집 밖에 있는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