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곤증은 왜 점심 식사 후에 가장 심할까요?
출산율은 왜 새벽에 더 높을까요?
새벽이 혈당이 가장 낮아지는 이유는요?
내 머릿속에 시계가 있다
인간은 시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 혈압 및 체온의 일중 변화, 호르몬 분비, 비슷한 시간에 울리는 배꼽시계 등 우리 몸에서 관찰되는 많은 생리적 현상들이 24시간의 일주기리듬(Circadian rhythms)의 특성을 갖지요. 일주기리듬 외에도 하루에 몇 번씩 변동하거나 몇 달에 걸쳐 변동하는 주기도 있는데, 24시간보다 짧은 경우를 Ultradian rhythm이라고 하고, 월경처럼 24시간보다 긴 경우를 Infradian rhythm이라고 합니다(J Kor Sleep Soc 2009).
일주기리듬을 조절하는 조직을 생체시계(Biological clock)라고 하는데, 시상하부의 바로 앞 쪽에서 시신경이 교차하는 시각 교차 구역 바로 윗부분에 위치만 쌀알만 한 크기의 시신경 교차 상핵(Suprachiasmatic Nuclei, SCN)이 바로 그것입니다(Science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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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 속에 지우개.. 아니, 시계가 있다 (출처=구글 이미지) |
사실 사람의 일주기 리듬은 24시간이 아니라 24.2~24.9시간 정도입니다(Science 1999; N Engl J Med 2000). 그래서 24시간의 하루 주기에 생체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는 외부자극(Zeitgeber; 시간 제공자)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여러가지 환경과 개인의 행동양식 등이 포함됩니다. 가장 효과적인 자극은 빛으로 알려져 있지요(J Biol Rhythms 2005). 빛은 눈을 통해 뇌의 SCN을 자극하고, SCN은 이 자극을 받아 생체리듬을 조절하게 됩니다.
노화와 수면
집 앞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요, 앞집 할머니와 동네 어르신들이 해도 안 뜬 이른 시간에 매일같이 나와 시간을 보내시더라고요. 그 소음에 잠을 깨다 보니 덕분에 저도 아침형 인간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왜 새벽잠이 없어지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오후에 일찍 피곤해지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주기리듬이 앞으로 이동하는 것을 위상전진(advanced sleep phase syndrome, ASPS)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생체 시계의 변화로 인해 발생합니다.
일주기리듬에 대한 노화의 영향은 단순한 생리기능에 대한 것에서 복잡한 인지 수행에 대한 영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요, 노화가 SCN에 의해 조절되는 생물학적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SCN의 노화가 노인의 수면변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Yamazaki et al., 2002). 나이가 들면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생체시계인 SCN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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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토닌은 개체의 생체 주기를 조절하는 지용성 호르몬으로 빛에 반응하여 낮 동안에는 억제되어 있다가 밤이 되면 점차 그 농도가 상승하는데, 이에 의해 수면이 유도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멜라토닌의 야간 분비도 점차 감소합니다(Hardeland, 2012). 노인들은 은퇴 후 집이나 요양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일광 노출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노화로 인해 SCN가 위축되면 빛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므로 멜라토닌 분비에 영향을 주어 수면장애를 일으키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죠.
코티솔(Cortisol)은 부신피질에서 생성되며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axis)의 조절을 받아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낮에는 저하되어 있다가 자정 무렵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아침에 일어날 무렵 최대치에 도달하여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게 되는데요, 노인들의 코티솔 분비는 젊은이에 비해 더 이른 아침에 최고치에 다다라 일주기 위상도 함께 당겨지게 됩니다(J Kor Sleep Soc 2006). 이것은 노화로 HPA 축의 피드백 기능이 저하되면서 코티솔의 분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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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솔 수치는 HPA 축에 의해 조절되기 때문에 스트레스와도 관련이 있는데요, 65세 이상의 노년층은 사회적 고립과 같은 삶의 변화가 스트레스로 작용하면 코티솔 수치를 변화시켜 밤에 자주 깨고 깊이 잠들지 못하는 등의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노인이 새벽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노화가 가장 큰 원인이긴 하지만 은퇴 후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낮잠을 자는 등의 생활 패턴의 변화도 야간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노화로 인한 SCN의 위축과 내분비 호르몬의 분비와 기능장애 등 신체기능 장애가 내인적 요인이라면 개인의 생활 습관은 외인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노인이 새벽잠이 없는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 연구도 있는데요, 노인이 동이 트기 전 깨어나는 것은 집단의 젊은 구성원들이 자고 있는 동안 포식자들의 위협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자연선택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잠을 잘 못자는 조부모 가설 (Poorly sleeping grandparent hypothesis)'이라고 명명했습니다 (David R. Samson et al., 2017). 재미있는 논리이긴 하지만 논문을 읽어보니 33명의 소규모 집단의 연구인 데다가 귀납적 추론으로 과학적 근거가 많이 미약해 보이네요.
많은 노인들이 수면 문제를 경험하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덜 자도 되는 것은 아니고요, 65세 이상의 노인도 매일 7-8시간의 숙면을 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수면의 양은 유아기에서 성인까지 감소할 수 있지만 이러한 경향은 60세 전후로 멈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의 하나로 새벽잠이 없어지고 수면의 질도 떨어지지만 노화는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 더 악화되고, 생체리듬을 깨트리는 데에는 생활습관도 큰 영향을 미치니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관리로 우리 모두 새벽에 자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 보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