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중독
중독성 질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로 도파민을 들 수 있는데요, 여러 도파민성 신경전달 시스템 중에서도 중변연계 경로(Mesolimbic mescortical pathway)는 동기부여 및 보상 행동에 관여합니다. 중독성 물질/행동이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고 이러한 자극이 반복되면 중변연계 경로에 변형이 일어나 중독 행동이 유발한다는 것은 이제 알려진 사실입니다(Proc. Natl. Acad. Sci. 1988).
음식 중독(Food Addiction)에 관해서는 1956년 T. Randolph가 처음 언급한 이후로(Q J Stud Alcohol 1956) 특정 종류의 음식이나 과식으로 인한 음식 중독 가능성이 수십년동안 논의되어 왔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비만과 폭식이 도파민 신호와 관련이 있으며(Lancet. 2001), 보상 관련 뇌 영역의 활성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지요(Biol Psychiatry. 2009).
실제로 음식 중독은 통제력 상실, 부정적인 결과를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등의 약물 중독 증상과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Psychiat Ann. 2003).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5판(DSM-5)의 물질 의존에 대한 진단 기준과도 많은 부분이 일치하죠(Appetite 2011).
중독되는 음식은 따로 있다
사실 중독성 물질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들은 대부분 가공과정을 거친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아편도 양귀비를 정제하여 만든 것이죠. 자연식품에는 단맛을 내는 음식(예: 과일)과 지방을 포함한 식품(예: 견과류)이 있지만 당과 지방이 모두 많이 함유된 자연식품은 찾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현대 식품산업에서는 인위적으로 당과 지방의 양을 늘려 더 맛있게 만든 고도로 가공된 식품들이 존재하지요. 이러한 가공식품들은 자극적일 정도로 맛있거나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방법으로 뇌 보상 영역을 자극하여 중독을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한 연구에서 쥐에게 고당 · 고지방의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식단(베이컨, 소시지, 치즈 케이크, 설탕 프로스팅 및 초콜릿이 들어간 식품)을 장기간 먹였더니 헤로인, 코카인처럼 뇌 자극 보상 반응(BSR)의 역치가 계속 증가했습니다. 이는 뇌의 보상 시스템의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이는 식단을 중단해도 마약성 약물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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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에너지밀도가 높은 음식은 마약처럼 뇌 자극 보상 시스템의 역치를 상승시키며, (b) 이는 음식을 중단하여도 마약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출처=Nat Neurosci. 2010) |
연구진은 또한 맛있는 고지방 식품을 먹을수록 D2R 발현 수준이 감소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약물 중독자 및 비만한 사람에게서 D2R의 밀도가 매우 낮았다는 보고(Benton & Young, 2016; Science. 2008 )와도 일치하는 결과입니다.
도파민은 세포막의 도파민 수용체에 결합하여 세포내 신호전달을 통해 작동하는데, 이때 도파민 D2 수용체(dopamine D2 receptor; D2R)가 도파민성 신경전달기전 조절에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반복적으로 섭취했을 때 D2R 감소와 같은 신경 적응 반응이 일어나면 보상 결핍이 발생하여 강박적인 섭식과 같은 중독 행동이 유발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인 쾌락의 메커니즘이 비만과 약물 중독의 기초가 되는 것이죠(Nat Neurosci 2010).
보상 과민증은 굶는 다이어트를 오래 하는 경우에도 발생합니다. 굶을수록 음식을 즐거움으로 인식하는 쾌감 회로가 강하게 발달하여 과식, 폭식과 같은 중독 행동을 하기 쉬워집니다. 바디 프로필을 찍은 후 다시 급격한 체중 증가를 경험하시는 분 많으시죠? 절제는 필요하지만 너무 무리하게 절제하는 다이어트는 뇌에 영향을 줘서 반드시 강박적 식사(과식, 폭식)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피자가 자꾸 먹고 싶은 이유
혈당 부하(Glycemic Load; GL)는 중독과 관련된 뇌 영역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Am J Clin Nutr 2013). 그래서 정제 탄수화물(설탕, 흰 밀가루)과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섬유질, 단백질, 물이 제거되어 당과 지방이 몸속으로 흡수되는 속도가 빠른 가공식품이 일반적으로 중독되기 쉬운 식품으로 생각됩니다. 피자가 바로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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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이 강한 음식 순위. 피자가 1등~ (출처=PLOS ONE 2015) |
그리고 피자가 자꾸 먹고싶은 데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치즈인데요, 피자는 치즈가 많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음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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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사랑입니다만 |
우유 단백질 중 80%는 카제인(Casein)인데, 카제인 단백질은 치즈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농축되어 함량이 7~10배 증가합니다. 카세인은 소화 과정을 거쳐 다양한 종류의 카소모르핀(Casomorphin)으로 쪼개지며, 이는 뇌의 보상 시스템에 작용하여 기분을 좋게 하고 중독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를 아편상 활성이라고 하고 이런 화합물을 오피오이드(Opioid, 아편 유사제)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채식하는 의사 닐 버나드는 치즈를 포함한 유제품을 '유제품 크랙(dairy crack)'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크랙=신종 마약의 일종). 카제인은 사람의 모유 속에도 있습니다. 물론 소젖과는 비율이 다르고요. 아기가 어마 젖을 먹을 때 행복해 보이는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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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는 사랑입니다만 |
그런데 오피오이드 함유 식품은 또 있습니다. 밀 글루텐이 소화되어 생기는 엑소르핀(Exorphine)과 글리아도르핀(Gliadorphin 또는 gluteomorphin), 콩에는 소이 모르핀(Soymorphins), 시금치에는 루비스콜린(Rubiscolins), 쌀의 오리자텐신(Orizatensin)이 그것이지요. 그러면 이 식품들은 다 먹으면 안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치즈가 중독되는 것은 카소모르핀 때문이라기보다는 고단백, 고지방의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식품이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인류는 에너지가 풍부한 식품을 갈구하는 방식으로 기근의 시기에 생존할 수 있었고 그렇게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정 음식을 '크랙' 또는 '정크 푸드' 등으로 폄하하기 보다는 가공식품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음식은 감사한 마음으로 대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먹는 즐거움도 인생의 중요한 즐거움 중 하나이니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요. 다만 아무리 건강에 좋다는 음식도 과식해서 좋은 것이 없는 것처럼 뭐든지 적당히 먹을 필요는 있겠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