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살 빠지는 사람
사람은 항온 동물로 중심 체온을 항상 37℃로 유지합니다. 인체 내 대사에는 다양한 생화학적 효소들이 필요한데, 이 효소들은 37℃ 전후의 온도에서 활성화되기 때문에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지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체내에서 발생하는 열과 외부에서 드나드는 열의 양이 일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섭취하는 에너지도 매일 다르고, 체온을 발산하는 정도도 외부의 기온이나 습도에 따라 수시로 변하죠. 그래서 이에 맞춰 체온조절 시스템도 능동적으로 작동되어야 체온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항상성(Energy Hoemostasis)은 섭취(Energy intake)와 소비(Energy expenditure)의 균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요, 이 때 에너지 섭취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욕입니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에서는 안정시 대사율(Basal Metabolism)이 총 에너지 소모의 60-75%, 소화 흡수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adaptive thermalgenesis)가 5-10%, 육체적 활동 15-30%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능동적인 체온 조절 시스템에 있어 식욕과 안정 시 대사율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에너지 항상성 (출처=Cancer Epidemiol Biomarkers Prev 2012) |
에너지 항상성을 조절하는 데에는 렙틴(Leptin)이라는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Lancet 2005). 그리스어 '가늘다'라는 뜻을 가진 렙토스(leptos)에서 유래한 그 이름처럼 식욕을 억제하여 음식물 섭취를 줄이고, 교감 신경계를 자극하여 지방 분해(Lipolysis)를 유도하여 체중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Natur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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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뜨거워지면 열을 추가적으로 생산할 필요가 적어지고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들므로 에너지 균형을 위해 렙틴이 분비됩니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입맛이 없어지고 살이 빠지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입맛이 없어도 어떻게 해서든 먹어야 건강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더울 때 입맛이 없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이죠. 오히려 저처럼 4계절 내내 입맛이 좋다면 그것이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왜인지 한번 살펴볼게요.
사시사철 입맛이 좋은 사람
체지방이 에너지를 저장하는 기능만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다양한 신호 전달물질과 호르몬, 혈관조절물질을 생산하고 분비하여 체내 에너지 대사를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중요한 내분비 기관입니다. 그래서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지방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해요. 그렇지만 과도해도 문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조직에는 중성지방의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백색지방조직(White adipose tissue)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열을 발생시키는 갈색지방조직(Brown adipoe tissue)의 2가지가 있습니다. 갈색지방조직은 백색지방조직보다 지방이 적고 에너지(=열)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가 많아 갈색을 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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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방조직을 이루는 백색지방세포(왼쪽)와 갈색지방세포(오른쪽) (lipid droplet; 지방구, nuceleus; 세포핵, mitochondrium; 미토콘드리아) (출처=Alexandra Paul, 2018) |
백색지방조직은 지방의 양이 많아 흰색을 띠며 주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지만 아디포카인(Adipokine)이라고 불리는 호르몬들을 분비하는 기능도 합니다. 그중 하나인 랩틴도 백색지방조직에서 분비되는데(Nature, 1994), 식욕조절의 중추인 시상하부(hypothalmus)에 작용하게 됩니다(Nat Metab. 2019).
지금까지는 렙틴이 갈색지방조직의 열 생산을 자극하여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킴으로 살이 빠지게 한다고 여겨져 왔는데요,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렙틴은 갈색지방조직의 활성화나 에너지 소비의 증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렙틴은 갈색지방조직의 열생산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체온의 임계점(Set point)을 변화시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체온을 조절합니다. 렙틴이 교감신경 성장과 활동에 영향을 주어 지방분해를 촉진하는 것은 맞지만 렙틴의 체지방 감소 효과는 식욕 억제로 인해 음식 섭취가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구요(Endocr Rev.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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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상태라면 체지방량이 평소보다 증가하거나 더운 날씨로 인해 추가적인 열 생산이 필요없는 경우 렙틴이 분비되어 식욕을 억제하여 체지방을 줄이고 에너지 항상성을 조절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렙틴의 작용이 적절하게 일어난다면 뚱뚱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사실 렙틴 분비와 같은 생물학적 브레이크는 실생활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아요. 비만을 조장하는 환경 속에서 현대인은 배고파서 먹는 경우보다는(본능) 먹고 싶어서 먹을 때(쾌락)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섭식은 습관이기 때문에 입맛이 없고 배가 안 고파도 때가 되면 먹는 경우도 많고요.
특히 뚱뚱할수록 항상 입이 궁금하고 먹을 때 많은 양을 먹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물론 뚱뚱한 사람도 렙틴이 분비되기는 합니다. 아니, 오히려 정상 체중인 사람보다 더 많이 분비되지요. 렙틴은 체지방량에 비례하여 증가하기 때문입니다(Nat Med. 1995). 이를 고렙틴 혈증(Hyperleptinemia)이라고 하는데요, 높은 렙틴 수치는 그 자체로 렙틴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 렙틴 저항성을 유발합니다.
뚱뚱할수록 더 먹고 싶어 하고 마른 사람일수록 입이 짧은 것은 바로 체지방량과 렙틴 저항성 때문이죠. 날씨가 덥든 춥든 계속 뭐가 먹고 싶고 한번 먹을 때 숟가락을 내려놓기가 힘들며, 남과 똑같이 먹는데 나만 찌는 것 같고, 겨울에 남보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탄다면 렙틴 저항성이 생긴 상태라고 볼 수 있겠네요. 본인이 비만한 상태라면 더욱 빼박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고요?
동물 모델에서 설탕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할 때 렙틴 감수성이 증가했거나(Gerontology 2011), 금식+재식이의 반복으로 렙틴 저항성이 개선되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J Kor Endocr Soc., 2008). 적게 먹고 건강한 식생활과 생활습관, 누구나 다 아는 그 방법과 간헐적 단식이 렙틴 저항성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