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이야기 - ④] 보이차의 맛과 향기 편

보이차의 

차는 약이 아닌 기호식품으로 효능보다는 맛에 대해 더 자주 논의된다. 중국에서는 차기(茶氣)라는 표현을 쓰는데, 차기가 강하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향이 강하고 맛은 맵고 쓰고 떫은 것을 가리킨다. 한의학적 접근법으로 차를 마시고 몸에서 반응하여 느껴지는 느낌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기는 같은 사람이라도 환경과 기분, 신체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끼며 문화적인 측면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꽤 직관적인 개념으로 인기(人氣)라고 칭하기도 한다. 

유명한 셰프가 파스타는 덜 익힌 알덴테가 맛있는 거라고 하면 푹 익힌 파스타를 좋아해도 그게 잘못된 건가 생각하게 된다. 취향이 다른 것을 두고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식이 적다고 나의 취향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 방법이 다르다고 틀린 것도 아니며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차가 내 몸에 가장 좋은 차이니 그저 즐겁게 마시면 될 일이다. 스아실 잘 만들어져 맛이 좋은 차는 그리 많지 않고 차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보이차의 맛과 향기에 대한 용어 해석 

그렇지만 즐겁게 마실 차를 고르려니 기준은 필요하고 차맛을 표현하는 말은 중국어에서 온 것이라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보이차의 맛과 향기를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를 정리해보았다. 

 

진향 (陳香, old aroma)

보이차는 시간에 따라 진화(陳化)되어 차성이 순해지고 성질이 따뜻해지며 맛도 좋아지는데 진향은 좋은 향기만을 뜻한다기보다 차의 전반적인 품질 향상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물론 모든 보이차가 오래될수록 맛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차계에서는 100년 묵어도 쓰레기는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애초에 좋은 모차를 사용하여 품질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적절한 저장환경 아래에서만 진향이 가능하다. 묵을수록 더욱 향기롭다는 뜻인 월진월향(越陳越香)을 줄여 진향이라 말하는 듯싶기도 하다. 참고로 퀴퀴한 곰팡이 냄새(매미, 霉味)와 진향은 다르다. 진향은 산화와 발효 과정 중 새롭게 생성되는 물질이 만드는 향으로 기분 좋은 향을 의미한다. 


연향 (香, Smoky

연향이란 연기 냄새를 뜻한다. 지금도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굴뚝이 없는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고 팬을 얹어 차를 덖기 때문에 연기가 찻잎에 스며들어 나무 타는 연기 냄새와 같은 스모키한 향을 갖게 된다. 연향은 차맛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맛 중의 하나로 여겨지며 보통 연향이 나는 차는 가격이 저렴하다. 그러나 취향에 따라 이 스모키한 냄새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소수 민족의 농부들이 차를 덖는 솥 (출처=http://hojotea.com)

연향 (荷香, lotus)

윈남 대엽종의 어린 새싹(芽茶, 최소한 1급 이상)을 발효 정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숙성시키면 청엽 향이 사라지고 은은한 연꽃향이 나는데 마른 찻잎에서 맡기는 쉽지 않고 차로 끓였을 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난향 (蘭香, orchid)

난향은 향기가 있는 난초의 향기이며 연꽃과 녹나무 향 중간 어드메의 미묘한 향으로 보이차의 향기 중에 가장 귀한 향으로 친다. 녹나무 숲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녹나무의 향이 나는데 장향이 청엽 향(풀냄새 같은 풋풋한 향) 보다 약하면 난초향이 되고 녹나무 향이 청향을 덮으면 녹나무 향 보이차가 된다고 한다. 3~5등급의 보이차는 대부분 약한 녹나무 향 또는 난초향을 가진다.

그러나 보이차의 연꽃향과 난초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가 싶다. 예로부터 중국의 문인들은 난초를 좋아했다. 차에서 난향이 난다고 함은 난초꽃처럼 맑고 은은하며 그윽한 분위기를 뜻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한 것 같다. 생각의 힘이란 꽤 강력하여 때로는 의지에 따라 없는 향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보이차의 난초꽃향이란 미약하거나 존재하지 않으므로 느끼기 어렵다. (사진 출처=https://kknews.cc)

화과향 (花果香)

화과향은 꽃과 과일향을 뜻하며 보이차의 화과향은 다행히도(?) 상상 속의 향기는 아니다. 꽃향 및 과일향을 내는 향기성분은 알코올 및 알데하이드류의 화합물로 차의 향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J Agric Food Chem., 2015) 찻잎 속의 아미노산이 산화되어 생성된다. 이 반응을 Strecker degradation이라고 하며 고온에서 빠른 속도로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온에서도 천천히 반응하여 만들어지고 생성 후에는 빠르게 손실된다. 열과 미생물에 의해 충분히 산화된 숙차에는 향기가 거의 없고 오랜 기간 천천히 산화되는 생차에는 오래도록 향기가 있는 이유이다. 


밀향(蜜香, honey)

꿀과 같은 기분 좋은 향을 의미한다. 이는 맛이라기보다는 향기이며 앞서 설명한 것처럼 향기는 발효와 숙성과정에 따른 결과로 대부분의 차는 1~5년 안에 꿀 향이 나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향으로 바뀐다. 


캐러멜향

고온의 환경에서 찻잎 속의 당질이 캐러멜화(Caramelization)되었을 때 캐러멜과 같은 향이 날 수도 있다. 이는 제조과정 중의 열이 강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조가 끝난 후에 잔류 효소와 미생물이 더 많이 제거되므로 캐러멜향이 나는 차는 장기 보관에는 적합하지 않다. 물론 꿀맛이라 금세 호로록 사라져 버리긴 하지만 말이다.


장향(樟香, camphor)

녹나무를 장뇌목(樟腦木, camphor tree)이라 하며 녹나무의 향기를 장향(樟香)이라 한다. 장향의 아로마 노트(Aroma note)는 허브향, 나무향, 흙향, 맵고 시원하고 톡 쏘는 소독약 비슷한 향으로 유칼립투스향과도 유사하다. 

윈남성에는 장뇌 수림이 많은데 그 속에 섞여 자라는 차나무는 땅 속으로는 뿌리가 교차하고 지상으로는 장뇌목의 향기를 흡수하여 잎에 저장하므로 장향을 나타낸다는 설이 있다. 그렇지만 이 설명은 상상력이 뛰어난 누군가의 뇌피셜이 구전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학적인 설득력이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차나무의 신선한 잎은 특별한 향이 없으며 중국 차연구소가 출판한 《중국 차경》에 따르면 보이차의 향미는 발효숙성 과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되어있다. 장향의 향기성분인 리나로울(Linalool)은 보이차에서 나무향(woody)을 내는 아로마 화합물과 같으며 생차보다는 발효가 진행된 숙차에서 더 높은 농도로 검출된다(Food chemisty: X, 2022). 

따라서 보이차에서 장향이 났다면 그것은 정말 녹나무 향기가 맞다. 다만 생물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방향성 화합물로 인한 것으로 녹나무 숲에서 자라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리나로울은 차의 카로티노이드 전구체에서 파생된 케톤체(ketones)이므로(Food Res. Int., 2018) 차엽의 녹색이 진할수록 차후에 장향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회감 (回甘, sweet)

혀로 바로 느껴지는 단맛은 첨미(甛味)라 하며 찻물을 넘긴 후 뒤늦게 느껴지는 단맛을 회감(回甘)이라 한다. 쓴맛을 내는 차 폴리페놀의 함량이 높을수록 일종의 착시 또는 대비 효과로 회감도 뚜렷해진다. 쓴맛과 단맛이 함께 작용하여 형성되는 맛이므로 잘 숙성된 생차에서 느낄 수 있다. 

좋은 차는 회운(回韻, 코와 입으로 돌아나오는 향과 맛)이 몇 시간씩 지속된다고 하는데 회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반면 회운은 훈련이 필요하다 한다. 누구나 느낄 수 없는 것은 미미하거나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찻물을 삼킨 후 목이 촉촉하니 상쾌하여 편안하고 달콤함과 청량함 등이 동시에 느껴지며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을 후운(喉韻)이라 하는데 내 생각엔 후운을 회운이라고 하는 것 같다.  

간혹 마셨을 때 목이 마르거나 건조해지고 가려움, 붓기, 이물감, 죄는 듯한 느낌, 목이 잠기는 느낌이 드는 것을 쇄후(鎖喉)라 하며 모차의 품질이 떨어지거나 오염된 경우, 제조 공정상 및 보관 과정 중에 습을 먹었거나 통풍이 너무 잘 되어 건조해진 경우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품질이 낮음을 뜻한다. 


구감 (口感, body)

구감은 입에서 느껴지는 차의 느낌을 말하며 커피나 와인의 바디감과 비슷한 표현이다. 커피나 와인에서 바디감이란 농도나 점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 떫은맛을 내는 탄닌과 점도를 내는 다당류의 함량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보이차에서 구감은 무게감을 포함하여 차의 종합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산미 (酸味, Sour)

보이차의 신맛은 미생물(주로 세균류) 대사산물인 유기산 때문이다. 이는 숙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생차가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 Aspergillus niger 및 Penicillum 속과 같은 진균류(곰팡이)의 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여 차가 잘 익도록 돕는다. 따라서 익어가는 생차라면 약한 산미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만 열과 습도가 너무 높아 과발효되어 신맛이 강해진 경우라면 쓴맛 성분을 분해하여 차맛을 진화시키는 곰팡이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차가 분해되어 갈변되고 부서지며 탕색이 탁하고 지저분해진다. 물론 맛도 좋지 않기 때문에 차의 품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증차감 (層次感, layered)

여러 가지 맛이 입체적으로 느껴져서 맛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차가 뜨거울 때와 식어갈 때, 탕을 우려내는 횟수를 거듭할 때, 그리고 입 속에서 맛이 바뀔 때(전화, 轉化) 증차감이 있다 또는 맛이 풍부하다고 표현한다. 


매끄러운

숙성과정을 거쳐 특유의 탄닌감, 쓴맛, 산미 따위가 적고 부드러울 때 매끄럽다고 한다. 

 

흙 맛 (earthy)

보이차는 오래 묵는 과정 중에 쌓이는 먼지와 같은 불순물과 습을 먹어 소여물 삶는 냄새 비슷한 흙 맛을 내기도 한다. 실제로 흙이 있을 수도 있고. 비리거나 쿰쿰한 흙내는 세차 과정이나 10분 정도 팔팔 끓이면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다. 흙내를 진향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보이차는 흙내가 나지 않는다. 

 

생진 (生津)

차를 마실 때 차 폴리페놀이 입안의 침샘을 자극하여 침을 생기게 하는 작용을 말하며 주로 생차에서 느낄 수 있다. 폴리페놀에 의해 생기지만 숙성이 덜 되어 탄닌 성분이 너무 많은 남아있는 경우에는 잘 생기지 않는다. 

 

고삽미 (苦涩味)

떫은맛과 쓴맛을 말한다. 고대에는 고차(苦茶)라고 불렀을 정도로 차는 원래 쓰고 떫은맛이 있다. 이는 카페인, 안토시아닌, 차 사포닌, 탄닌과 같은 차 폴리페놀 성분에 의한 것으로 특히 윈난성 대엽종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보통 쓴맛과 떫은맛은 함께 나타나며 자연진화를 거쳐 서서히 단맛으로 전환되므로 고삽미가 강할수록 숙성이 잘되면 맛있다. 


버섯향

버섯향은 옥테놀(Octenol)에 의한 것으로 지방산의 산화적 분해에 의해 생성된다. 일부 곰팡이도 대사산물로 옥테놀을 만들어낸다. 후발효 과정 중 복잡한 변형을 거쳐 생성되는 휘발성 화합물이 보이차의 향기를 만들며 실제로 숙성된 보이차에서 옥테놀이 검출된다고 하니(J. Agric. Food Chem. 2014) 보이차에서 버섯향이 났다면 그건 기분 탓만은 아니다. 보이차의 버섯향은 좋은 품질을 나타내는 향기에 좀 더 가까워 보인다.


버섯 알코올로도 불리는 octenol (1-Octen-3-ol ) (출처=위키피디아)

(출처=https://yunnansourcing.com/)


대추향 (棗香, Jujube)

대추향은 보이차의 향기 중에서도 클래식한 종류에 속한다. 5~9등급의 쇤잎(老葉)과 노경(莖)이 당류 함량이 높아 발효 과정에서 가용성 당을 더 많이 생성하며 나무향과 같은 다른 향기와 섞여 말린 대추에서 나는듯한 달콤한 향을 낸다. 그래서 대추향이 나는 보이차는 색이 어둡고 비주얼이 썩 예쁘지는 않으며 보통 전차 형태가 많다. 


대추향 보이차는 노엽으로 만든 전차 형태가 많다 (사진 출처=www.toukagen.com)


맛있는 보이차의 맛이란 

차의 맛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맛을 표현하는 용어도 정해진 기준도 없어 상상 속의 맛과 향기까지 존재한다. 게다가 취향도 모두가 다 다르다. 그러니 명품차라 한들 내게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내 입에 맛있는 차가 곧 좋은 차이며 따라서 좋은 차를 고르려면 많이 마셔보는 수 밖에는 없다. 보이차 입문자라면 해외직구보다는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안전성과 품질이 확보된 차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이차 이야기 - ①] 차나무의 품종과 6대 다류 편

[보이차 이야기 - ②] 보이차 정의와 제조공정 편

[보이차 이야기 - ③] 보이차의 등급과 형태 편

 [보이차 이야기 - ⑤] 보이차의 효능 편